관리처분소송의 피고
행정소송과 민사소송은 다양한 각도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그 중 하나는 소송을 하는 당사자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예컨대 옆집에서 건축을 하면 민사소송으로 건축금지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이 때 원고와 피고는 인접한 토지소유자들이 된다. 이해관계가 직접 대립하는 사람들끼리 소송을 하므로 서로 최선의 공격과 방어를 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송은 건축허가를 내준 행정청이 자신의 입장을 밝힐 기회가 없고 건축허가와 관련된 공익적 관점이 재판에서 고려되기 어렵다는 약점이 있다.
이와 달리 행정소송으로 건축허가 취소소송이 제기되면 원고는 옆집 사람이지만 피고가 행정청이 된다는 점에서 민사소송과 다르다. 이 소송은 공익적 관점에서 건축법이 정한 요건이 모두 충족됐는가를 따지는 장점이 있는 반면 가장 큰 이해관계자인 건축주가 소송당사자가 아니라는 약점이 있다.
이렇게 유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정소송을 하기도 하고 민사소송을 하기도 하며, 이 둘은 법의 해석에 따라 둘 다 허용되거나 또는 하나만이 허용되기도 하는 관계에 놓인다. 재건축·재개발사건에서 조합원들이 가장 많은 불만을 표출하는 관리처분의 문제도 이와 유사하게 총회결의무효를 구하는 민사소송과 관리처분계획 취소소송이라는 행정소송이 둘 다 허용되다가 최근 대법원의 입장변화에 따라 취소소송만이 허용되는 것으로 원칙이 수정됐다.
행정소송에서 피고는 보통 구청장 같은 행정주체가 되고 예컨대 조합설립인가 취소소송에서도 피고는 구청장이 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우리 대법원은 오래 전부터 관리처분계획 취소소송은 조합이 피고가 되는 것으로 생각해 판시해 왔다. 관리처분계획에 대해 취소소송에서 대법원이 상정하는 피고는 조합인데 조합은 민사소송에서도 피고가 됐던 자라는 점에서 통상적인 경우와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취소소송에서는 조합과 구청장 모두 행정청의 지위에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만약 구청장이 피고가 되면 취소소송의 대상도 인가처분이 될 것이고, 조합이 피고가 되면 관리처분계획이라는 처분이 취소의 대상이 된다. 대법원은 이러한 유형의 분쟁에서 주된 분쟁의 당사자가 조합원과 조합이라는 점에 주목해서 구청을 제외한 양 당사자를 원피고로 하는 것을 전형으로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론상 관리처분계획의 인가는 조합이라는 행정주체와 구청장이 공동으로 완성하는 행정처분이기 때문에 이 둘이 모두 취소소송의 공동피고가 되는 것이 옳다.
대법원이 바라는 대로 조합만을 피고로 해서 소송을 하면 행정법원에서는 피고가 하나이므로 간단해서 좋을 수 있지만, 판결의 효력이 구청장에게 미치지 못해 사후에 취소판결이 무의미한 것이 되거나 또는 잘 집행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관리처분계획에 대해 취소판결이 내려졌을 때 구청에서 판결의 내용과 무관하게 행동하거나 또는 시간을 지연시키면 취소소송에서 승소한 조합원은 사실상 아무런 구제책이 없어 구청을 상대로 다시 소송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수많은 재건축·재개발 관련사건을 행정소송으로 전환한 지금 관리처분계획 취소소송의 피고를 어떻게 정하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기술적인 문제로 보이지만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쟁점을 가지고 있다. 최근 대법원이 소송관할 문제로 이미 한번 국민의 권리구제요청을 지연시킨 상황에서 또 다시 이 문제로 권리구제가 지연될 수 있다. 민사소송에서 조합이 패소해도 재건축사업이 그리 크게 위축되지 않았던 이유는 상당 부분 구청장이 소송의 당사자가 아니었다는 점에 있었다. 소송에서 피고를 어떻게 정하는가는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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