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소소송에서 조합설립인가의 하자
지난해 9월 대법원이 오랜 숙고 끝에 조합설립 유·무효에 대한 다툼을 행정소송으로 통일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비용분담에 대한 구체성 결여를 이유로 조합설립을 무효로 선언해 왔던 그간의 민사판결에 제동을 건 것이었는데, 이렇게 파기환송된 사건은 기존의 민사소송과는 전혀 다른 기준을 적용받는 것이 옳다.
민사소송은 당사자 간의 계약을 원형으로 보고 계약의 유·무효를 평가할 때 의사표시의 하자를 집중 심리해 하자가 발견되면 무효로 선언하는 것이 원칙이다. 민사소송이었던 조합설립무효소송에서도 무효를 주장하는 쪽에서 조합원들의 의사표시에 하자가 있다는 점을 주장하면 쉽게 무효판결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의사표시의 하자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비용분담에 관한 사항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으면 하자가 있는 것이라는 이론이 발전됐다(비용분담론).
대법원의 새로운 입장에 따라 행정법원에서 심리하게 될 소송은 취소소송 또는 무효등확인소송이라는 항고소송이 된다. 행정소송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90일이라는 기간제한을 둬 그 기간 내에 다툰 사람은 취소소송을 통해 구제하고, 그 기간을 놓친 사람은 처분이 무효인 경우에만 구해주는 방식을 취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사건들은 다시 소제기시점에 따라 취소소송과 무효등확인소송으로 나뉘게 되고 전자는 상대적으로 쉽게 구제되겠지만, 후자는 구제받기 어려운 양상을 띨 것이다.
조합설립인가에 대한 항고소송은 피고가 조합이 아니라 구청장이라는 점, 다툼의 대상도 조합설립결의의 유·무효가 아니라 설립인가에 대한 취소소송 등이라는 점에서 크게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도 행정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하는 사유가 의사표시의 하자라는 기준이 아니라 행정처분의 위법성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문제는 어느 정도 잘못을 조합설립인가의 취소사유로 하고, 또 어느 정도의 큰 잘못이 있으면 인가를 무효로 선언할 것인가에 대한 법원의 기준이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법원이 조합설립무효소송을 파기환송하면서 행정법원에 대해 최소한의 기준도 내려 보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인데, 이에 대해 아마 서울행정법원도 상당히 당황스러울 것이다.
우선 기존의 민사판결에서 비용분담을 이유로 무효로 봤던 그 기준은 인가의 위법성 또는 무효를 판단할 때 직접 적용할 수 없다. 이는 대법원 판결에 의해 간접적으로 확인되는 것인데, 민사소송으로 가면 조합설립이 무효라는 판단을 피할 길이 없다는 점을 대법원이 충분히 고려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사소송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됐던 ‘비용분담’에 관한 이론은 행정소송에서 상당히 후퇴시키는 것이 옳다. 조합설립결의에 대한 민사소송이 봉쇄되고 조합설립인가를 취소소송으로 다투라는 취지는, 조합설립인가가 당사자들의 신청서를 모두 포괄하는 광범위한 설권적 처분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이어서 동의서의 미비는 처분의 위법사유를 구성할 뿐이라고 봐야 한다.
또 비용분담의 구체성 결여를 이유로 조합설립이 무효가 된다는 것은 아파트 재건축에서 시작된 가설일 뿐이므로 재개발조합의 인가를 판단할 때에는 이보다 더 완화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재건축조합처럼 비용분담을 사전에 완벽하게 정하는 것이 불가능한 재개발사업의 특수성이 충분히 고려돼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국토부가 제시한 동의서양식이 충실히 사용됐다면 조합설립인가를 위법한 것으로 보고 취소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재개발과 재건축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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