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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사업과 신탁계약
기사입력 10-07-12 11:11   조회 : 4,691
 
 
정비사업과 신탁계약
 
 

재건축·재개발의 사업절차를 정하는 도시정비법에는 신탁에 대한 조항이 존재하지 않지만, 재건축에 있어 신탁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재건축과 거의 비슷한 성질을 갖는 재개발사업에서는 신탁이라는 제도 자체가 거의 이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현재 재건축사업은 신탁이라는 제도를 이용하지만, 그 규율은 전적으로 신탁법과 조합정관에 의존하고 도시정비법과는 무관한 기형적 형태를 띤다. 왜 재건축에서는 신탁제도가 사용돼야 하고, 재개발에서는 사용되지 않아도 좋은지를 법적으로 설명하는 견해도 찾기 어렵다.

 
신탁이라 함은 위탁자와 수탁자의 특별한 신임관계에 기하여 위탁자가 특정의 재산권을 수탁자에게 이전하거나 기타의 처분을 하고 수탁자로 하여금 특정의 목적을 위하여 그 재산권을 관리, 처분하게 하는 법률관계를 말한다(신탁법 제1조). 진정한 소유자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재산을 신탁하면 수탁자에게 소유권이 넘어가게 되는데, 한국에서는 소유권을 제3자에게 넘겨주는 것이 매우 위험한 것으로 인식되어 신탁제도가 활발히 사용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법시대에 재건축에서 신탁제도가 활용됐던 이유는 우선 조합이 재산을 재분배할 때 조합재산을 이전해 주는 형식을 띠어야 했기 때문이다. 구법상 재개발사업에서는 관리처분계획을 인가 받은 이후 ‘분양처분’이라는 행정처분을 통해 소유권이 배분됐다. 그러나 이러한 특별절차가 없었던 재건축은 민사상 합의로 재산권이 이전돼야 했고 조합은 이론상 자신의 재산이 아닌 아파트를 조합원에게 이전할 수 없었다. 또 조합원의 재산이 조합에게 신탁되면 그 자체로 시공자나 은행에 대해 담보적 기능을 하고 이주비대출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재건축사업의 정관은 조합원에게 일정한 시점에 이주할 의무와 함께 재산을 조합에게 신탁할 의무를 같이 정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에 비해 구법시대부터 현재까지 재개발사업은 조합원의 구소유권이 신탁되거나 소멸되는 명확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이주를 위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도 현존하는 부동산에 대해 저당권을 설정하는 방식이 채택되며, 분양처분(이전고시)할 때까지 구소유권을 소멸하지 않는다. 이론상으로는 분양처분이나 이전고시에 의해 과거에 존재하던 소유권이 소멸하고 새로운 아파트의 구분소유권이 조합원에게 생겨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재개발사업의 분양처분이나 이전고시에는 구소유권을 소멸시키는 권능이 없다는 점을 잘 모르고 하는 잘못된 해석이다.
 

도시재개발법이나 도시정비법이 권리배분과 관련해서 참조한 도시개발법에서는 이전고시에 해당하는 ‘환지처분’이라는 수단이 있는데, 환지처분에는 명시적으로 구소유권을 소멸시키는 권능이 법률에 의해 인정되고 있다(도시개발법 제42조제1항). 이와 달리 재개발사업에는 반대하는 사람들의 소유권을 박탈하기 위해 별도로 수용권이 부여돼 있으며, 이 조항은 이전고시나 분양처분이 소유권을 소멸시키지 못한다는 전제하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리처분계획에서 정해진 권리를 조합원이나 일반에게 분양하려면 조합은 주택단지에 대한 소유권을 모두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전고시의 적법요건이며, 이 요건을 결하고 이뤄지는 현재의 이전고시는 엄밀하게 말해 모두 무효이다. 도시정비법에 정비사업의 일정시점에 신탁을 통해 소유권을 확보할 의무를 조합에게 부과하는 조항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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