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이 필요한 이유
재개발사업은 오래 전부터 구획정리사업(현 도시개발사업)을 본받아 사업의 완료시까지 조합원의 구소유권을 유지하면서, 이전고시로 그 소유권이 변환되는 것으로 운영해 왔다. 국·공유지나 정비기반시설, 반대하는 자들에 대한 토지소유권 등 일부는 불가피하게 조합이 소유권을 확보하지만, 구역내 대부분의 토지는 조합원이 소유한 상태로 사업이 진행된다.
이에 비해 재건축은 구법시대에 주택건설촉진법에 근거해 진행됐고, 재개발과 같은 관리처분계획도 없었다. 또 동법상 직장조합, 지역조합과 같은 주택조합사업에서 사업주체인 조합이 소유권을 확보하던 점을 반영해서 재건축조합도 사업을 위해 소유권을 확보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래서 법률에서 강제하고 있지 않았지만 재건축사업은 조합원이 이주하면서 조합에게 소유권을 이전하는 절차를 밟았다. 법률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조합정관에 조합원의 신탁의무를 정하고 이에 따라 조합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이뤄졌다.
구법시대에 조합원의 구소유권을 그대로 유지하던 재개발과, 조합이 일정 시점까지 정비구역의 전체 소유권을 확보하던 재건축의 사업방식은 2003년 도시정비법이 제정된 후에도 여전히 관행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재건축과 재개발사업의 법적 성질이 다르지 않다는 판단을 전제로 도시정비법에 통합되고 절차도 통합됐으므로 조합의 소유권확보 형태도 통일되는 것이 이론상 옳다. 재건축이나 재개발의 소유권확보 방식 중의 하나는 현행법에 잘 맞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재개발사업은 조합원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소유권을 그대로 유지하다가, 사업이 완료된 시점에 이전고시를 통해 구소유권과 동일성을 유지하는, 전환된 소유권을 이전받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조합설립동의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로 해석되는 현행법의 태도와 잘 맞지 않는다. 현행법은 조합을 설립하고 조합이 정비구역의 소유권을 일단 전부 흡수했다가, 사업을 완료해서 다시 분배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다. 그래서 이러한 조합을 만들어내는 행정청의 인가가 대법원의 판단처럼 설권행위가 되는 것이고, 조합의 성립 그 자체가 정비구역 내 토지등소유자에게 아주 위협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재개발사업에서 조합이 소유권을 확보하지 않고, 사업의 완료시까지 조합원에게 소유권을 맡겨 두는 것은 법리에 맞지 않는다. 조합원의 토지 중 일부에 대해서는 공원을 설치하거나 학교를 설치하기 위해 사전에 소유권을 이전받아야 하는데, 이 경우에도 조합이 소유자가 아니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전고시로 구소유권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므로, 매도청구소송이나 수용재결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고, 이 또한 조합의 전면적 소유권 확보를 전제로 설계된 제도들이다.
최근 재개발과 절차가 통합된 재건축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착각에 근거해서 신탁을 불필요한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들이 주장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틀린 절차를 기준으로 삼아 제대로 된 절차를 없애자는 주장이므로 매우 위험한 것이다. 실제로 조합원은 정비사업의 진행과정에서 자신의 토지소유권을 계속 유지한다는 법적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고, 조합이나 행정청도 정비구역내 토지소유권과 사용권이 조합에게 있다는 전제하에 실무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 재건축의 경우에도 정관만에 의해 소유권을 이전하도록 법률이 방관하고 있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법률을 개정해서 조합의 소유권확보에 대한 법적 의무를 명시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