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설립무효소송의 운명
오랫동안 재건축·재개발 사건에 대한 소송 중 다수가 민사소송으로 진행됐고 그 결과 도시정비법이라는 공법의 해석을 거의 대부분 민사법원이 담당하는 모순이 있었다. 개인 간의 민사문제에 익숙한 민사법원은 재건축·재개발과 같은 공법적 개발사업의 진행과정과 제도의 취지를 잘 이해하기 어려웠고 판결의 결과도 서로 모순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비용분담에 관한 합의가 구체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조합설립무효를 선언해왔던 민사법원의 판결은 그 모순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래서 최근 대법원이 관리처분계획이나 조합설립무효에 대한 소송을 행정소송으로 제기해야 하는 것으로 정리하고 이를 모두 행정법원 또는 하급심으로 이송한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제 재건축·재개발, 도시환경정비사업과 같은 정비사업의 주요한 분쟁은 모두 행정사건으로 다뤄지고 공법적 원리에 의해 심사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
그러나 이번 결정으로 갑작스레 수백 건의 사건을 이송받은 행정법원이나 각급 법원은 행정소송으로 전환될 수많은 사건들에 대해 새로운 심사기준을 정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취소소송에서 원고를 승소시키기 위한 위법성의 판단기준,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를 승소시킬 정도의 중대 명백한 하자 인정문제가 정리돼야 할 가장 시급한 쟁점이다.
우선 행정법원 등에 이송된 각 소송들의 운명은 이들이 행정처분(총회결의가 아닌)이 내려진 후 90일 이내에 제기됐는가 여부에 결정적으로 의존한다. 관리처분단계에서 제기된 설립무효소송 같은 것들은 물론이고, 그 전에 제기된 민사소송도 조합설립인가 후 90일이 넘어 제기됐다면 이들은 모두 ‘무효등 확인소송’이라는 행정소송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행정소송법 제4조 2호). 행정소송인 무효 등 확인소송은 민사소송과는 판이하게 약간의 잘못만으로는 어림도 없고, 중대하고도 명백한 잘못이 행정청에게 있어야 원고가 승소하게 된다. 따라서 민사소송에서 조합설립무효로 선언됐던 많은 사건들이 행정소송에서 원고패소로 결론 날 가능성이 높다. 민사소송에서 위력을 떨치던, “비용분담에 관한 사항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조합설립은 무효”라는 원칙은 행정소송에서 처분의 무효사유로 바로 채택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행히 조합설립인가 후 90일 이내에 제기된 민사소송들은 이송된 후 취소소송으로 전환될 것인데, 이 소송에서도 과연 어떤 하자를 인가처분의 위법사유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민사소송에서 승소했던 원고들이 행정소송에서 패소했을 때 판결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점들도 고려해서 처분을 위법하게 만드는 비용분담에 관한 구체성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이에 더해 취소판결이나 무효판결이 나면 추진위원회가 부활하는 것인가 또는 그 부활여부에 대해 취소소송 등에서 같이 확인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가, 무효소송에서 사정판결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등의 문제는 한참 먼 훗날의 과제로 보이지만, 이를 고려하지 않고 행정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소송 외적인 문제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요소는 사건을 이송받는 법원들의 상황이 매우 판이하다는 점이다. 이송받는 법원이 서울행정법원처럼 단일한 건물에서 위법과 무효판단의 심사기준을 어느 정도 조율할 수 있으면 별 문제가 없지만, 경기도 등의 사건은 멀리 떨어져 있는 법원들에서 각각 상이한 기준으로 위법과 무효를 판단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런 법적 불안에 대해 법원들이 인식을 같이하고 해결책을 찾아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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