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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과 건축법
기사입력 08-02-26 18:42   조회 : 4,144
 
 
숭례문과 건축법
 
 
 
‘국보 1호’ 라고 초등학교 때부터 지정번호를 외우도록 교육 받았던 숭례문이 늙은 방화범 한 명 앞에 속절없이 사라졌다. 처음 숭례문의 화재소식을 접했던 우리 대부분은 늠름하게 물을 뿌려주는 소방차량을 보면서, 또 근거는 없지만 무엇보다도 공중파 방송의 카메라가 이미 도착해 있을 정도라는 점을 생각해 당연히 화재가 진압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 아침 우리 언론은 숭례문이 전소됐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그때까지는 화재의 원인조차 불확실한 터라 소방방재청과 문화재청이 언론의 주된 사냥감이었는데, 내 개인적으로는 건축법이 가장 큰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건축물이 붕괴되거나 건축물에서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일차적인 책임은 건축법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후 방화범이 잡히자 사건의 책임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다시 어이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덕분에 숭례문 전소의 책임이 대부분 방화범에게 넘겨지고, 문화재청도 소방방재청도 한결 부담을 덜게 됐다. 그러므로 방화범이 잡히기 전에 그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았던 건축법의 책임은 이제 언급하기도 쑥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중요한 국보가, 그것도 국보 1호가 한 명이 홧김에 지른 불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이런 일이 앞으로도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고 체념하는 것이 우리를 얼마나 비참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불을 질렀어도 불을 끌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을 뿐 아니라, 또 사전에 불이 잘 붙지 않도록 대비할 수도 있었다. 이것은 시스템의 문제이지 방화범 개인의 우발적 범행으로 결론 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그런 종류의 일이 아니다.  건축법은 건축물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막기 위해 수많은 규정을 마련하고 있지만,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지정된 문화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건축법 제3조). 그래서 건축법에는 건축물이 지켜야 할 방화, 내화, 내진 등의 기준이 마련돼 있지만 숭례문은 예외였다. 숭례문 같은 목조건물에 현대 건축기술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번잡했기 때문이고, 이는 건축감독청이나 문화재청 모두에게 만족할 만한 타협책이었을 것이다. 문화재는 문화재이므로 보호하지 않기로 제도가 정해져 있었다는 뜻이다.
 

시너와 라이터를 일반인이 손쉽게 얻을 수 없는 시대 또 몇 톤의 무게에 달하는 수백 대의 버스들이 그 주위를 순환하지 않았던 시대를 넘어, 숭례문이 2008년 남대문시장 앞에 서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결과는 너무도 처참하다. 
 

만약 건축법이 숭례문을 적용대상으로 삼고 있었다면 숭례문에도 내화재료의 사용이 의무화됐을 것이고, 소방법(소방시설의 설치 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도 자동적으로 적용됐을 것이다(소방법 제7조). 건축법이 적용돼야 소방법이 적용되는 구조로 돼 있다는 것도 언론은 관심이 없다. 다만 방화범의 범행 동기만이 궁금할 뿐이다.
 

건축법이 이렇게 건축물의 안전 확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수많은 인명이 손상돼도, 국보1호가 소실돼도 우리 사회는 법과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문화재청장을 사퇴시키고, 또 방화범의 파렴치함을 질타하면 우리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허술한 법제를 그대로 두고 숭례문을 복원하겠다는 말부터 나오는 세태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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