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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시 서울
기사입력 08-08-29 12:33   조회 : 4,447
 
 
지하도시 서울
 
 
 
어린 시절 지하실은 항상 신비한 공간이었다. 집안 식구들이 항상 사용하는 마루나 부엌, 방과 달리 외진 구석에 추가로 존재하는 서비스공간이었고, 한 나절을 그 안에 머물러도 아무도 오지 않는 외로운 공간이었다. 특히 어둡고 컴컴하던 지하실은 습하고 차가운 공기, 숨어있는 거미줄, 곰팡이 냄새와 함께 아련한 기억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서울의 지하는 지상의 마천루 못지않게 다양하고 활기찬 기능을 담당한다. 삼성역의 코엑스몰은 3만평이 넘는 복합시설로 유명하고 심지어는 각 대학들도 경쟁적으로 캠퍼스를 지하화하고 있다. 이미 지하철과 도시철도는 거미줄보다 더 복잡해서 중년을 넘긴 사람들은 지도를 보아도 목표지점을 찾기 쉽지 않은 지경이 됐다.
 

대도시의 지하가 이렇게 다양하고 폭넓게 사용되는 계기는 지하층이 용적률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건축법시행령 제119조). 약간의 공사비용을 더 들이면 지하로 몇 개 층을 더 늘려 용적률 상한선을 피해갈 수 있으므로 지하층은 개발사업자에게 매우 매력적이다. 용적률 위주로 편성되는 건축물대장도 지하층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무관심)한 입장을 보이므로 지하층은 법적 통제에서도 자유로운 편이다.
 

지하층에 대한 건축법의 통제는 매우 미미한 것이어서 당해 층의 절반이상이 지표면 밑에 있으면 지하층이라고 정의할 뿐, 지하층이 몇 층까지 가능하고 그 용도를 어떻게 한정해서 사용해야 하는지 정하고 있지 않다. 현행법처럼 지하3, 4 층에 별도의 피난계단을 요구하는 정도로 화재나 재난에 대비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지만, 건축법은 요지부동이다. 대구에서 지하철화재로 큰 사고를 당하고도 그것은 지하철의 문제일 뿐 건축물의 문제는 아니라 보는 것이다.
 

지하층에 대해 무관심하기는 국토계획법(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용적률 계산에서 지하층을 제외하는 것은 국토계획법의 중대한 예외이다. 국토계획법은 토지의 합리적 이용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인데, 지하층에 어떤 용도의 시설이 들어오고 몇 대의 주차수요가 추가로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규정이 없다. 지하층이 잘 발달한 지역의 주변이 항상 교통정체로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국토계획법이 지하층에 잘 대처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건축법과 국토계획법이 지하층에 무관심한 이유는 오래 전부터 지하층을 사람들이 잘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상식적으로는 지하에 한 층을 만드는 것보다는 지상으로 한 층 더 올리는 것이 공사비도 덜 들고, 지하보다는 지상이 사람의 활동에 유리하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그러나 건축공법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토지의 집약적 이용이 높아짐에 따라 우리의 기억이나 상식과 다른 지하공간들이 무수하게 등장하게 됐다. 이들에 대한 법적 규율이 충분하게 마련되지 않으면 건축물이 점점 더 땅속 깊이 파고들어가는 것을 막기 어렵다.
 

지하층을 잘 활용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고 지하화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만 입법자가 한번쯤은 지하 10층에서 화재를 당하는 상황을 생각해보기를 권하고자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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