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맞지 않는 도시환경정비사업
명동, 청계천, 남대문 일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높고 커다란 빌딩들은 대부분 업무시설인데, 이들 중 상당수는 대기업의 사옥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빌딩이 커다란 필지에 대규모로 건설될 수 있었던 것은 도시정비법 덕분으로, 이 법이 ‘도시환경정비사업’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 제도 하에서 오랜 기간 ‘도심재개발’로 불리던 도시환경정비사업은 도심의 낙후된 지역을 재정비한다는 명분 하에 대토지소유자에게 개발사업의 주도권을 부여하는 조금 기묘한 사업이다.
도시환경정비사업은 사업대상지의 약 80% 내외를 보유한 대토지소유자와 작게는 수십명, 많게는 수백명에 이르는 군소필지 소유자들로 구성되는 단체를 사업시행자로 삼는다. 도시정비법은 사업시행자인 이 단체를 ‘토지등소유자’라 부르는데, 단체의 구성원들을 지칭하는 토지등소유자와 똑같은 명칭을 사용해서 법조문을 이해하기 더욱 어렵다. 통상적인 정비사업에서 정비조합이 구성원인 조합원 또는 토지등소유자와 명확하게 구별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도시환경정비사업은 간단히 말하면 대토지 소유자가 소필지 소유자의 토지를 매수하고 매수가 어려우면 토지를 수용해서 빌딩을 짓는 사업이다. 그러므로 사업의 초창기에 수십명의 구성원으로 시작되는 사업시행자 단체는 사업의 도중에 한명의 대토지소유자만 남는 1인 단체가 된다. 대상지역의 토지소유권이 모두 대토지소유자에게 집중되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를 취하지 않으면 도심의 버려진 땅을 책임감 있게 개발할 주체를 찾아내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한 고육책이지만, 2008년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치주의 관점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선 도시환경정비사업이 명분상 공익을 위한 것이라 포장되지만 사업의 현장으로 가보면 빌딩을 지어 분양하고자 하는 대토지 소유자가 대지를 장방형으로 만들기 위해 주변의 귀퉁이의 땅들을 사들이는 형국일 뿐이다. 그러므로 협의매수에 응하지 않아 결국 토지를 수용당하는 주민의 입장에서는 왜 자신의 땅이 수용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새로 짓는 건물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공공의 청사이거나 예술의 전당처럼 공공성을 띤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토지를 수용당하는 소필지 소유자가 소송을 제기하고 도시정비법의 위헌성을 정면으로 문제 삼으면 그 소송의 승패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 외 도시환경정비사업은 그 절차가 법조문을 통해 잘 드러나지 않아 헌법이 정하는 법치주의의 정신에도 반한다. 헌법상 법치주의는 명확성을 생명으로 하는데, 제도가 설계되고 운용될 때 국민들에게 예측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도시정비법이 2003년 제정되면서 재건축과 재개발에 대해 상세한 조문을 두고 특히 조합제도에 대해 많은 조문들이 마련된 것과는 달리 도시환경정비사업의 절차에 대해서는 독자적인 규정이 거의 없다. 도시환경정비사업의 시행자는 조합이 아니기 때문에 도시정비법상 조합제도가 적용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시공자 선정, 관리처분에 대한 조항도 매우 불분명하게 구성돼 있다. 그러므로 도시환경정비사업을 제도로서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불명확하고 공공성이 약한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몇 천억, 몇 조원이 조달돼 빌딩이 만들어지는 서울의 도심은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수준을 생생히 보여주는 교육의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