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지방식 또는 수용방식
서울의 강남이 800만평(영동지구), 400만평(잠실지구) 규모로 정비되고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한 지 벌써 30년이 넘었다. 지금의 강남은 서초동에서 송파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포괄하고 기반시설이나 경제 활력이 매우 양호한 곳이지만, 아직 제3한강교(한남대교)가 세워지기 전인 1970년까지도 경부고속도로 양쪽은 논, 밭, 임야로 구성된 미개발지였다.
불모의 땅이었던 한강 남쪽에 기반시설이 깔리고 토지가 구획돼 시가지가 될 수 있었던 법적 근거는 토지구획정리사업법이었는데, 이 법에 의해 강남뿐 아니라 서울 시가지의 70% 이상이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강남을 개발했다고 표현할 때 개발한 행위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가 택지를 조성하고 기반시설을 설치하는 것이다. 물론 강남의 개발은 이렇게 조성된 택지를 구입해서 아파트를 건설하고 분양했던 행위도 포함하는 것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택지를 조성하는 과정 그 자체를 의미한다.
눈을 돌려 분당과 일산의 개발과정을 봐도 역시 500만평 규모의 새로운 택지가 확보돼 기반시설이 설치되면서 개발이 시작된다. 서울 외곽의 신도시를 개발하는 행위도 역시 간선도로를 설치하고 그에 의해 구획되는 택지들을 만들어내는 행위가 중심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서울을 벗어난 신도시에서 택지를 조성하고 기반시설을 설치하는 근거로 활용된 법은 택지개발촉진법이다. 강남의 토지구획정리사업법, 신도시의 택지개발촉진법 이 둘 모두 개발대상지의 택지를 조성하기 위한 근거법이었다.
토지구획정리사업은 말 그대로 토지의 구획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되므로 기존의 토지소유자는 그대로 남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를 법적으로는 환지방식이라 하는데, 땅을 바꾸어주는 방식이라는 뜻이다. 토지소유자는 토지구획이 정리돼 장방형으로 새롭게 구획된 땅을 제자리에서 받거나 또는 다른 자리의 땅을 받게 된다. 이에 비해 택지개발촉진법에 의한 택지개발은 모든 소유권을 개발사업자가 확보하고 기존의 토지소유자는 모두 토지를 잃는다. 이에 반대하는 자들에 대해 법률에 따른 수용과 보상의 절차가 진행되므로 이를 수용방식이라 부른다.
토지구획정리사업법이 2000년에 폐지됐고 이를 이어 도시개발법이 제정되면서 택지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환지방식과 수용방식을 모두 채택했다. 동법이 제정될 때 수용방식의 택지개발촉진법이 같이 폐지되거나 또는 도시개발법에 수용방식이 도입되지 않는 것이 이론적으로 옳았다. 택지개발촉진법이 현존하는 한 도시개발법 상의 수용방식은 제도의 중복이기 때문이다. 택지를 개발하는 사업자들의 입장에서는 개발사업을 위한 다양한 수단이 불분명하게 널려 있는 것이 유리하지만, 그에 비례해서 주민들의 입장은 불리해질 것이다.
사업방식을 선택할 때 우선순위가 없는 것이라면 개발사업자는 여러 선택지 중에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수용방식)을 취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토지소유자인 주민은 환지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에만 수용방식의 사업이 허용되기를 바란다. 환지방식과 수용방식 간에 우선순위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의 법제와 판례는 사업자의 입장에 서 있다. 법제상으로도 수용방식과 환지방식에 순서가 명시돼 있지 않고, 법원도 그렇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상 비례원칙이나 과잉금지 원칙에 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